귀도 신경계도 없는 식물이 소리를 듣고 분명히 반응한다는 사실이 또 확인됐다. 선행연구들은 식물은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파악하며, 종에 따라 그 방법도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니콜라스 맥리스 교수 연구팀은 지난달 말 조사 보고서를 내고 벼가 빗소리를 알아듣고 발아한다는 가설이 맞는다고 주장했다.
MIT 연구팀은 볍씨를 이용한 실험에서 빗소리를 들은 씨앗이 그렇지 않은 씨앗보다 30~40% 빠르게 발아한다는 입장이다. 빗방울이 지표면에 닿을 때 발생하는 음파가 볍씨 세포 내부의 입자를 흔들어 성장신호를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연구팀은 1980년대 발표된 수중 빗소리 측정 연구에 주목했다. 물은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같은 빗방울이라도 공기보다는 물에서 큰 압력파를 만든다. 이 음압이라면 볍씨 세포 내에 있는 아밀로플라스트를 흔들지 모른다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맥리스 교수는 "아밀로플라스트는 전분을 축적한 세포 내의 작은 입자로 세포 내부를 채우는 젤리 같은 액체(세포질)보다 밀도가 높다"며 "이 색소체가 세포 내에서 안정된 위치를 잡아, 식물에게 '중력은 이 방향'이라고 알려주는 센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볍씨 8000알로 실험에 나섰다. 벼는 토양은 물론 얕은 물속에서도 모두 발아할 수 있는 식물로, 논에서 자라는 특성상 빗소리와 관계를 조사하기 적합하다.
각 볍씨를 얕은 수조에 넣은 연구팀은 일부 씨앗에 소리만 들리도록 거리를 조절하면서 물방울을 계속 떨어뜨렸다. 물방울의 크기와 떨어지는 높이를 바꿔가며 약한 비와 중간 비, 강한 비를 재현했다. 소리만 전달되고 물방울 자체는 씨앗에 닿지 않도록 해, 소리 효과만을 순수하게 측정했다.
그 결과, 빗소리에 노출된 그룹은 같은 조건에서 소리에 노출되지 않은 그룹에 비해 30~40% 빠르게 발아했다. 또한, 수면에 가까운 볍씨일수록 소리를 잘 감지하고, 더 빠르게 성장했다.
식물이 소리를 감지할 가능성은 선행연구를 통해 꾸준히 제기됐다. 서호주대학교 연구팀은 2017년 완두콩 뿌리의 음향 반응을 실험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연구팀은 2018년 국제 학술지 프런티어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식물이 단순히 빛, 화학물질뿐 아니라 소리 자극에도 반응해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특정 주파수의 소리는 유전자 발현, 성장 속도, 면역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이 연구의 핵심이다.
2023년 발표된 조사 보고서 '식물의 소리 인식: 생태학적 중요성에서 분자적 이해까지(Sound perception in plants: from ecological significance to molecular understanding)'는 식물이 곤충이 잎을 갉아먹는 진동을 파악해 방어용 화학물질 생산을 활성화한다고 주장했다. 2025년 이탈리아 토리노대학교 연구팀은 일부 식물이 벌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 꿀의 당도를 높인다는 관찰조사 보고서를 냈다.
결론적으로 식물은 귀도 뇌도 없지만 진동과 음파를 감지하는 기계적 센서, 즉 세포 구조를 가졌다. 여기서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성장을 조절하고 외적을 방어하며 번식 전략을 조절한다. 학자들은 식물의 이런 기능을 조사하는 분야를 식물음향학(phytoacoustics)으로 정의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