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전설의 왕 길가메시가 실존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을 대표하는 길가메시는 그간 존재를 입증할 자료가 없어 실존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이어졌다.

덴마크국립박물관(NMD)은 지난달 말 조사 보고서를 내고 저장고에 약 1세기 잠든 4000년 전 점토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길가메시의 실존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이번 성과는 NMD와 코펜하겐대학교가 공동 추진한 프로젝트 숨겨진 보물들(Hidden Treasures)의 주된 성과다. 이들은 길가메시에 대한 새 정보는 물론, 고대 의료 처방과 맥주 지급 기록 등 쐐기문자(설형문자)로 새겨진 고대 사회의 생활상도 여럿 파악했다.

NMD 관계자는 "국립박물관은 지난 100년 이상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설형문자 점토판을 수집해 왔다"며 "설형문자는 약 5200년 전, 현재의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에서 탄생한 문자로,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문자 체계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덴마크국립박물관 수장고의 수메르 점토판들에 대한 대대적 조사에서 길가메시의 존재가 드러났다. <사진=NMD 공식 홈페이지>

이어 "귀중한 유물들이 오랫동안 박물관의 저장고에 보관된 채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숨겨진 보물들 프로젝트를 통해 모든 점토판의 분석·분류·디지털화를 처음 완료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조사에서 수메르어와 아카드어 등 현재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고대어로 기록된 문서가 대량 확인됐다. 회계, 서신, 처방, 마법 주문, 그리고 왕의 이름을 나열한 왕명표 등 내용이 실로 다양했다. 특히 왕명표 일부에서 길가메시의 이름이 등장,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길가메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2600년경 살았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왕이다. 현재 이라크 남부 도시국가 우루크의 왕으로, 어머니는 여신 닌순, 아버지는 우루크의 왕 루갈반다다. 신화에서는 3분의 2가 신, 3분의 1이 인간인 반신반인 영웅으로 묘사됐다.

신화 속의 인물인지, 실존했는지 논쟁이 이어진 길가메시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NMD 관계자는 "길가메시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길가메시 서사시"라며 "구약성서 속 노아의 방주의 원형이 되는 대홍수 전설도 이 서사시에 포함될 정도로 길가메시는 유명하지만 실존 여부는 불투명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사시에서 길가메시와 싸운 키시의 왕은 고고학적으로 실존이 확인됐지만, 길가메시 본인에 관한 비문은 지금까지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왕명표는 역대 지배자의 이름을 순서대로 기록한 고대의 중요한 문서로, 이번 점토판은 기원전 3000년 말 왕들의 이름이 들어갔다"고 언급했다.

길가메시가 들어간 귀중한 수메르 왕명표가 덴마크에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숨겨진 보물들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전설과 현실의 경계에 있던 길가메시의 실존을 입증할 자료가 세계 어디든 더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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