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령선 메리 셀러스트호의 의문을 풀기 위한 노력이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학자들의 끈질긴 연구로 사건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수많은 창작물의 모티브가 된 유령선의 미스터리가 153년 만에 풀릴지 관심이 모였다.
미국 상선 메리 셀러스트호는 알코올 등 화물을 싣고 1872년 11월 7일 미국 뉴욕항에서 출항했다. 선장 벤저민과 아내, 어린 딸 외에 선원 7명 등 총 10명이 탄 배는 제노바가 목적지였으나 1872년 12월 5일 대서양 한복판에서 발견됐다.
배에는 식량이 충분했고 알코올 등 화물도 거의 멀쩡했다. 하지만 선장 가족과 선원 등 승선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미국 사법기관은 사고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학자들을 동원했고, 정밀 조사가 이어졌지만 150년 넘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올해 2월,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을 오판에 따른 재난으로 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메리 셀러스트호 미스터리를 다루는 웹페이지에 게재된 연구 '메리 셀레스트: 1872년 수수께끼에 대한 법의학적 재평가(The Mary Celeste: A Forensic Re-Evaluation of the 1872 Enigma)'는 승선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알코올 증기, 압력파가 결합된 사고로 해석했다.
조사에 참여한 태디우스 캠프 교수는 "당시 배에는 산업용 알코올 약 1700배럴(약 27만ℓ)이 실려 있었는데, 일반 규격인 참나무보다 다공성인 적참나무를 쓴 통에서 알코올 증기가 최소 300갤런 분량(약 4만8000ℓ)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겨울철 대서양의 거친 파도와 추위를 막기 위해 선창을 닫아둔 상태에서 알코올 증기가 퍼졌고, 선원들은 폭발 위험을 우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폭발을 피해 선원들이 일시적으로 구명정을 내려 몸을 피했다고 봤다. 알코올 증기 폭발은 큰 화염 없이 압력만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후 배로 돌아가려던 승선자들은 악천후로 밧줄이 끊어지며 표류했다는 게 연구팀 생각이다.
승선자들의 자발적 하선은 선행연구에서도 언급된 가설이다. 2006년 영국 다큐멘터리 'Solved: The Mystery of the Mary Celeste(해결: 메리 셀러스트호 미스터리)'에도 연구팀과 같은 의견이 제시됐다. 배는 멀쩡한데 사람만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기에 이만한 생각이 없다며 동조하는 학자가 늘었다.
항해 기록을 분석한 연구도 주목을 받았다. 역사학자 그레이엄 파이엘라는 메리 셀러스트호 발견 당시 배 상태와 항해 기록을 종합 검토했다. 그는 선체에 물이 차 있었고 항해 장비가 손상된 점에서 선장이 배가 침몰 직전이라고 오판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렇게 배에서 내린 승선자들이 폭풍우 등 기상악화로 표류했다고 그레이엄 파이엘라는 생각했다.
당시 항해 기술의 한계도 중요한 원인으로 여겨진다. 메리 셀러스트호의 마지막 항해 시기에는 정확한 위치 계산이 매우 어려웠고, 폭풍 속에서는 오차가 더 커질 수 있었다. 만약 선장이 배 상태를 실제보다 심각하게 판단했다면 "잠시만 대피하자"는 결정이 치명적 결과를 낳았을 수 있다.
올해 4월 공개된 연구 '메리 셀레스트 미스터리의 포렌식 3D 재구성(Forensic 3D Reconstruction of the Mary Celeste Mystery)'은 디지털 포렌식 기술을 접목했다. 연구팀은 선체 구조와 발견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3D 모델을 만들어 폭발부터 돌풍, 침수, 오판 등을 비교 분석하며 시뮬레이션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급박한 상황에 이뤄진 자발적 퇴선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아직 모든 의문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왜 선원들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배를 포기했는지, 왜 끝내 돌아오지 못했는지 여전히 확정할 수 없다. 시신이나 구명정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연구들은 적어도 초자연 현상 가능성은 크게 낮췄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역사 포럼에서도 최근에는 알코올 증기와 공포가 만든 비극이라는 설명에 공감하는 반응이 많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