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지역의 표범은 같은 종인데도 북부 개체보다 몸무게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 더럼대학교 캐스린 윌리엄스 교수 연구팀은 학술지 Heredity 6월 호에 이런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내고, 약 2만 년간 이어진 환경 적응이 표범의 몸집을 줄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각지에 서식하는 표범 43마리의 전장유전체를 분석, 약 2만~2만4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절정기에 현재 케이프 지역과 북부 사이에 광대한 반사막 지대가 형성되면서 표범 개체군이 서로 고립된 것을 확인했다.

케이프 지역은 사바나와 달리 먹잇감이 풍부하지 않았기에 이 지역 표범들은 체격과 근육, 골격, 에너지 사용에 관련된 약 90개 유전자 변이가 상대적으로 많이 파악됐다. 케이프 지역이 북부와 반사막으로 단절되면서 표범들이 오랫동안 고립됐고, 먹이가 부족한 환경에서 적은 에너지로 살아가기 위해 체격이 점차 작아졌다는 이야기다.

약 2만 년 전 현재의 남아공 케이프 지역이 서로 다른 기후의 두 지역으로 나뉜 뒤 각 지역의 표범 덩치에 변화가 나타났다. <사진=더럼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환경 변화가 동물의 몸집이나 형태를 바꾸는 사례는 사실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갈라파고스 핀치새는 기관 형태가 변형된 대표적 동물이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피터 그랜트와 로즈메리 그랜트 부부는 수십 년간 갈라파고스제도 핀치새를 추적 관찰한 연구를 통해 가뭄이 이어지면 단단한 씨앗을 먹는 개체의 부리가 점차 굵어지고,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다시 작은 부리를 가진 개체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사이언스(Science)를 비롯한 여러 학술지에 발표돼 자연선택을 실시간으로 입증한 대표 사례가 됐다.

기후 탓에 몸집이 바뀐 예도 있다. 19세기 독일 생물학자 카를 베르크만은 추운 지방 동물이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몸집을 키우고, 더운 지방에서는 작은 몸집이 유리하다는 베르크만의 법칙(Bergmann’s rule)을 제시했다.

이후 수백 종 포유류와 조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이 이 경향을 상당수 확인했다. 일본 고생물학자 시마다 켄슈 교수는 2022년 조사 보고서를 내고 약 1500만~360만 년 전 생존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상어 메갈로돈이 베르크만 법칙에 따라 찬물에 살수록 몸집이 컸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따라 일부 동물의 평균 체격이 변화하는 현상도 보고되고 있다.

먹이와 환경의 변화로 덩치가 변화도록 진화한 아프리카표범 <사진=pixabay>

육지와 떨어져 바다로 고립된 섬에서는 몸집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 동물학자 J.브리스톨 포스터는 1964년 논문을 내고 주변 환경, 특히 섬에서 획득 가능한 자원에 따라 생물의 크기가 결정되는 현상을 짚었다.

116종의 포유류를 대륙과 섬 개체군으로 나눠 관찰조사한 포스터는 섬에서 큰 동물이 작아지고 작은 동물은 커지는 현상을 파악했다. 작은 동물은 포식자의 부재로 인해 섬 거대화가 발생했고, 큰 동물은 먹이가 부족해 섬 왜소화가 나타난다고 포스터는 결론 내렸고, 이를 포스터의 법칙(Foster’s rule) 또는 섬 법칙(Island rule)이라고 명명했다.

환경 변화는 몸집뿐 아니라 유전자에도 흔적을 남긴다. 케이프 표범 연구에서도 에너지 대사와 근육 발달 등에 관여하는 약 90개 유전자에서 특징적인 변화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런 유전적 적응 덕분에 먹이가 적은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환경 변화에 따른 동물의 덩치 변화는 베르크만의 법칙이 유명하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흥미로운 사실은 오랫동안 고립됐음에도 케이프 표범의 유전적 다양성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이 집단을 독자적인 진화 역사를 가진 진화적으로 중요한 단위로 평가하고 별도의 보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빨라질수록 동물들의 적응 속도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봤다. 수만 년에 걸쳐 몸집을 바꾼 케이프 표범처럼 일부 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겠지만,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종은 멸종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따라서 개체군을 연결하는 생태통로 확보와 서식지 보전은 앞으로 생물다양성 유지의 핵심 과제로 꼽혔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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