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은 빛이 없는 색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검은 물체도 실제로는 적지 않은 양의 빛을 반사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빛을 먹는 검은색'은 자연에도, 인공적으로 만든 물질에도 극히 드물다.
최근 영국 연구팀은 초흑도료 반타블랙(Vantablack) 310을 인공위성에 적용해 광공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예술계와 산업계가 주목하던 초흑물질을 우주 개발까지 확장한 반타블랙은 단순히 검은 페인트가 아니라, 빛을 원하는 곳에서만 남기고 불필요한 반사를 없애는 차세대 광학 기술로 평가된다.
영국 서리대학교와 서리나노시스템즈(Surrey NanoSystems) 공동 연구팀은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에 실험 보고서를 내고, 반타블랙 310을 도포한 인공위성이 태양광의 약 2%만 반사한다고 전했다.
서리대 아슈다 차투르베디 박사는 "지구 저궤도에는 1만4000기 넘는 인공위성이 운용되고 있고, 수십만 기 이상 추가 발사될 전망"이라며 "특히 통신위성은 밤하늘에서 밝은 줄무늬를 남겨 천문 관측을 방해하는 광공해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타블랙 310을 칠한 위성은 국제천문연맹(IAU)이 권고하는 밝기 기준에 근접할 정도로 어두워질 수 있다"며 "실제 우주환경에서 내구성과 열 방출 능력은 앞으로 소형 위성 조비안 1호의 임무를 통해 완전히 검증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반타블랙 같은 초흑도료가 특별한 이유는 검은 안료를 많이 넣어서가 아니다. 반타블랙의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하면 수많은 미세한 홈과 기둥이 숲처럼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빛은 이 구조 안으로 들어간 뒤 여러 차례 반사되며 에너지를 잃고 결국 열로 흡수된다. 밖으로 다시 빠져나오는 빛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마치 구멍이나 허공처럼 보인다. 반타블랙 310 역시 빛을 가두는 산호를 닮은 미세한 구조가 표면에 분포한다.
반타블랙을 처음 주목한 것은 예술계였다. 2014년 개발된 반타블랙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검은 인공물질로 불리며 유명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72)에 독점 사용권이 부여돼 논란을 낳았다. 이에 예술가들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초흑도료를 잇달아 개발했고, 일본에서는 2020년 반사율을 극도로 낮춘 흑색무쌍(黒色無双)이 탄생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필립 에반스 교수 연구팀은 2024년 닉실론(Nxylon)을 공개했다. 고에너지 플라즈마를 이용, 목재 발수성을 높이려던 연구팀은 빛을 99.3% 흡수하는 신소재 닉실론을 우연히 얻었다. 흑색무쌍 같은 도료가 아니라 목재 기반의 소재인 점이 특이하다.
오늘날 초흑도료는 예술 작품뿐 아니라 카메라와 천체망원경 내부의 난반사를 줄이고, 정밀 광학장비의 성능을 높이는 소재로도 활용된다. 최근에는 인공위성 광공해 저감이라는 새로운 역할까지 맡게 됐다.
흥미롭게도 초흑 구조는 인간보다 자연이 먼저 만들어냈다.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팀은 2020년 개미벌의 일종인 트라우마토무틸라 비푸르카 몸 표면에서 초흑 구조를 발견했다. 이 곤충은 몸을 덮은 미세 돌기 덕분에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는다.
극락조 수컷의 깃털도 트라우마토무틸라 비푸르카와 구조가 비슷하다. 심해어의 일부는 피부가 빛의 99% 이상을 흡수해 포식자의 눈을 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인간이 개발한 초흑도료도 자연이 수천만 년에 걸쳐 진화한 빛 제어 기술을 모방한 결과인 셈이다.
초흑도료는 과제도 적지 않다. 열도 함께 흡수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방출할지 고민해야 한다. 강한 자외선이나 우주 방사선에 얼마나 오래 견딜지 추가 검증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초흑물질이 앞으로 인공위성은 물론 차세대 우주망원경, 양자광학 장비, 고성능 센서, 항공기 등에 폭넓게 사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