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난 23일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국내외 언론은 일본 추리문학의 거장이 남긴 발자취를 일제히 조명하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히 ‘일본의 유명 추리작가’라는 수식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한국 출판시장에서만큼은 무라카미 하루키(77)와 함께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일본 작가이자, 추리소설을 즐기지 않던 독자까지 서점으로 불러들인 보기 드문 이야기꾼이었다.
고인의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비밀’ ‘방황하는 칼날’ ‘갈릴레오’ 시리즈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데 그치지 않고 수년이 지나도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일본 소설이 국내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사례는 흔치 않다.
히가시노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추리보다 사람에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범인을 찾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가족과 사랑, 죄책감과 용서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추리소설을 읽지 않던 독자도 그의 작품에는 쉽게 빠져든 이유다.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독자층을 넓힌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서 발간된 그의 대표작은 어김없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됐다. ‘용의자 X의 헌신’이나 ‘갈릴레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하고 한국에서도 영화로 리메이크됐다. ‘방황하는 칼날’ 역시 한국 영화로 제작됐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백야행’ ‘비밀’도 여러 차례 영상화됐다. 그의 작품은 소설을 넘어 하나의 콘텐츠 원작으로 자리 잡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미스터리의 문턱도 크게 낮췄다. 복잡한 트릭과 난해한 추리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선택했고, 여기에 탄탄한 반전과 인간 드라마를 결합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폭넓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히가시노 게이고는 엔지니어로 일하던 중 1985년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상을 비롯한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고, 2023년에는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 1억 부를 돌파했다. 현재 일본 누적 발행 부수는 약 1억900만 부, 작품은 41개 국가와 지역에서 번역·출간됐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는 8월 5일 출간 예정인 ‘영원의 기억’까지 모두 106권의 작품을 남겼다. 한 시대를 대표한 추리작가의 삶은 아쉽게 막을 내렸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남긴 작품들은 앞으로도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며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전술한 것처럼 고인의 소설은 미스터리를 넘어, 세대를 이어 읽히는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