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연잎에 뒤지지 않는 초발수성을 가졌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학자들은 볏잎이 놀라운 초발수성을 발휘하는 미세 구조와 유전자까지 밝혀냈다.
일본 도쿄대학교 대학원 농학생명과학연구소 연구팀은 볏잎의 초발수성이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 돌기와 나노 크기의 왁스 결정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11일 발표했다. 이번 성과는 지난달 말 발간된 국제 학술지 Plant Physiology에 먼저 게재됐다.
연구팀이 볏잎 윗면에 물방울을 올려놓고 접촉각을 측정한 결과, 최대 약 156°를 기록했다. 접촉각은 물방울과 물체 표면이 만나는 지점의 각도로, 숫자가 클수록 물을 잘 튕겨낸다. 일반적으로 150°가 넘으면 초발수성으로 분류한다.
대표적인 초발수 식물인 연잎의 접촉각은 같은 실험에서 약 158°였다. 볏잎과 차이는 불과 2°다. 볏잎 위에 떨어진 물은 스며들거나 넓게 퍼지지 않고 연잎 위와 마찬가지로 둥근 구슬처럼 맺혀 굴렀다.
비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잎 표면에 있었다.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볏잎에는 약 1~2㎛ 크기의 미세 돌기 파필라(papilla)가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그 표면은 다시 훨씬 작은 왁스 결정으로 뒤덮였다. 마이크로 크기의 울퉁불퉁한 구조와 나노 크기의 왁스가 겹쳐 물과 잎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두 구조 중 하나라도 빠지면 발수 효과는 크게 달라졌다. 연구팀이 물에 쉽게 젖는 벼 돌연변이 113계통을 조사했더니, 파필라를 만들지 못하는 벼는 왁스가 정상이어도 접촉각이 약 10° 떨어져 초발수성 기준을 넘지 못했다. 왁스의 양이나 구조에 이상이 있는 일부 돌연변이는 접촉각이 90° 아래까지 내려가 오히려 친수성을 보였다.
발수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특정됐다. BGL은 파필라 형성을, WSL2와 WSL3, WSL4, OsHSD1/LGF1 등 4개 유전자는 잎 표면 왁스의 양이나 성질을 좌우했다. 연구팀은 정상적인 왁스의 양과 구조, 파필라가 함께 갖춰져야 벼 특유의 초발수성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이 능력은 인간이 벼를 재배하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재배용 벼의 조상에 해당하는 야생 벼에서도 강한 발수성과 비슷한 표면 구조가 발견됐다. 반면 물가가 아닌 숲에 적응한 일부 야생 벼에서는 파필라와 왁스 결정이 거의 없었고 발수성도 크게 떨어졌다. 연구팀은 초발수성이 벼가 반수생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유지해 온 형질이라고 봤다.
벼와 옥수수의 차이도 흥미롭다. 벼는 어린잎부터 성체의 잎까지 높은 발수성을 유지한 반면, 옥수수는 어린 시기에는 잎에 왁스가 있어 비교적 물을 잘 튕기다가 성장하면 왁스 결정이 사라져 접촉각이 약 80°까지 낮아졌다.
이번 발견은 얼마든 활용이 가능하다. 초발수 표면에서는 물방울이 굴러가며 먼지나 병원체 등을 함께 씻어낼 수 있다. 이른바 연잎 효과(lotus effect)다. 연구팀은 벼의 파필라와 왁스가 결합한 이중 구조를 모방하면 물과 오염물이 잘 달라붙지 않는 표면이나 고기능 발수 코팅을 만드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농업 분야의 접목 가능성도 있다. 잎이 젖어 있는 시간을 줄이면 곰팡이 같은 병원체에 잘 감염되지 않는다. 다른 작물의 발수성을 조절하면 홍수나 건조 같은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