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하가 탄생 초기부터 다른 은하를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린 사실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가 발견됐다. 약 118억 년 전 벌어진 대규모 은하 합병의 흔적인데, 먼 미래 우리은하 역시 안드로메다은하와 합쳐질 가능성이 있어 은하의 역동적 일생에 관심이 모였다.

이탈리아 국립천체물리학연구소(INAF) 연구팀은 이런 내용을 담은 관측 보고서 '가이아-소시지-엔켈라두스 합병보다 18억 년 앞선 대규모 은하 흡수 사건의 증거(Evidence of a massive accretion event 1.8 billion years before the Gaia-Sausage-Enceladus merger)'를 17일 발표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을 통해 얻은 이번 성과는 지금까지 논쟁거리였던 우리은하 고대 합병의 결정적 증거라고 연구팀은 소개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우리은하 중심에서 약 2만 광년 이내에 자리한 구상성단 39개다. 수많은 별이 공 모양으로 밀집한 구상성단 중에는 우리은하에서 가장 오래된 별들이 포함돼 있다. 다른 은하에서 태어난 뒤 합병을 통해 우리은하로 들어온 별들도 남아 있어 은하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종의 화석 역할을 한다.

약 120억 년 전 LKH 왜소은하와 젊은 우리은하가 충돌·합병하는 상황을 그린 상상도. 허블우주망원경은 구상성단 분석을 통해 이 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확인했다. <사진=NASA·ESA 공식 홈페이지>

미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을 통한 정밀 관측으로 각 구상성단의 나이와 금속함량을 측정한 연구팀은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우주망원경이 모은 관측자료를 결합했다. 그 결과 우리은하에서 태어난 성단이나 약 100억 년 전 가이아-소시지-엔켈라두스(GSE) 합병 당시 유입된 성단과 다른 제3의 집단이 드러났다.

INAF 다비데 마사리 선임연구원은 "GSE 합병은 약 100억 년 전 초기 우리은하가 비교적 큰 왜소은하 하나를 흡수한 사건"이라며 "가이아는 ESA의 가이아우주망원경, 소시지는 그 은하에서 넘어온 별들의 속도 분포가 길쭉한 소시지 모양인 점, 엔켈라두스는 같은 고대 합병 잔해를 각각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3의 성단들은 GSE에서 유입된 것보다 오래됐지만 우리은하 자체에서 형성된 성단보다는 젊었다"며 "이들이 약 118억 년 전 우리은하가 집어삼킨 별개의 왜소은하에서 탄생했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은하의 이전 은하 합병을 잡아낸 허블우주망원경 <사진=NASA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과거 각각 크라켄(Kraken)과 헤라클레스(Heracles) 등으로 불린 초기 합병 흔적이 하나의 사건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를 LKH(Low-energy-Kraken-Heracles)로 통칭했다. LKH가 품었던 별의 총질량은 태양의 약 5억 배로 추산됐는데, 현재의 우리은하와 비교하면 작지만 당시 우리은하 역시 성장 초기였기 때문에 LKH의 별 질량은 우리은하의 약 4분의 1에 달했다.

다비데 마사리 연구원은 "합병 시기는 약 118억 년 전, 즉 빅뱅으로부터 불과 약 20억 년 뒤"라며 "지금까지 우리은하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대규모 합병으로, GSE 합병보다 약 18억 년 앞선다"고 전했다.

연구원은 "이번 발견은 초기 우리은하가 내부에서 별을 만들어 덩치를 키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중요하다"며 "외부 은하에서 태어난 별들이 우주 탄생 약 20억 년 뒤부터 이미 우리은하에 대량 유입됐다. 은하가 다른 은하를 흡수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약 50억 년 뒤 우리은하와 합병이 예상되는 안드로메다은하. 시기나 합병 양상 등을 두고는 다양한 가설이 충돌하고 있다. <사진=NASA 공식 홈페이지>

우리은하의 포식은 LKH에서 끝나지 않았다. 약 100억 년 전에는 GSE를 흡수했고 그 사이에도 규모가 작은 여러 합병을 겪었다. 현재도 우리은하는 궁수자리 왜소은하를 흡수하는 과정에 있다. 수천억 개의 별을 품은 현재의 거대한 나선은하가 수십억 년 동안 다른 은하와 먹고 먹히며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이번 연구는 향후 우리은하가 겪을 극적인 변화에도 관심을 갖게 했다. 오래전부터 천문학자들은 약 50억 년 뒤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충돌하고 거대한 은하 밀코메다로 변모한다고 예상해 왔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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