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도 촬영장도 없는 40분짜리 드라마가 중국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편성됐다.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장편 드라마가 안방에 상륙하면서 시청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관심이 모였다.
중국 후난위성TV와 망고TV는 31일부터 AI 장편드라마 ‘후서유기(后西游记)’를 선보인다. 첫 시즌은 총 30부작이며 회당 분량은 약 40분이다. 망고TV에서 오후 6시 먼저 공개하고, 오후 8시 후난위성TV가 황금시간대에 편성한다.
‘후서유기’가 눈길을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작 방식이다. 이 작품은 실제 배우와 세트 없이 인공지능생성콘텐츠(AIGC) 시스템을 중심으로 인물과 배경, 장면을 구현했다. AI 영상은 이미 숏폼과 단편 콘텐츠에 널리 쓰이고 있지만, 30부작 장편이 위성방송 황금시간대에 들어간 것은 이례적이다.
안후이위성TV도 지난 7월 전편을 AI로 제작한 ‘도화담기(桃花潭记)’를 방송한 적은 있다. 이 작품은 20부작, 회당 약 10분짜리였다. ‘후서유기’는 이보다 훨씬 긴 회당 40분 장편이고, 후난위성TV의 황금시간대에 들어간 점에서 차별화됐다.
작품은 이름 그대로 중국 고전 ‘서유기’의 후일담을 다룬다. 원작은 명말청초에 쓰인 익명의 동명 신마소설로, ‘서유기’의 대표적인 관련 서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드라마는 손오공이 성불한 뒤 1080년이 흐른 세계를 배경으로 새로운 돌원숭이 손소성이 등장, 다시 서쪽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작진은 AI 영상 특유의 가벼운 느낌을 피하기 위해 전통 중국 회화의 미술적 영감을 차용했다. 건축 형태와 의상, 색감, 장신구 등에는 역사 고문이 여럿 참여했다. 생성형 이미지들을 단순히 이어 붙이는 대신 하나의 동양 신화 세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작 과정도 독특하다. ‘후서유기’는 제작과 심사, 방송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먼저 공개된 회차에 대한 시청자 반응을 참고해 이어지는 이야기나 세부 표현을 조정한다. 완성된 작품 전체를 방송 전에 넘기는 기존 드라마와 달리 AI 제작의 빠른 수정 능력을 활용하려는 실험으로 풀이된다.
대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예고편을 본 중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영화 같은 동양 신화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응이 나왔다. 한편에서는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에서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아니냐는 물음도 눈에 띈다.
‘도화담기’도 AI가 만든 인물들의 얼굴이 서로 닮거나 장면마다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만 이야기와 전개에서 점수를 많이 받아 지난달 25일 방송분은 중국 황금시간대 전국 시청률 10위까지 올랐다. 적어도 AI 드라마가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실제 TV 시청자를 끌어들일 가능성은 확인됐다.
방송사가 AI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는 데는 비용 문제도 있다. 중국 연예매체 위리가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방송사가 AI 단편 드라마를 구매하는 가격은 실제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의 약 20% 또는 그 이하 수준이다. 배우의 출연료와 세트, 촬영장, 의상, 대규모 스태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생성형 AI는 수초짜리 영상이나 단편을 만드는 단계를 지나, 이제 장편을 찍어내기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가 AI 캐릭터의 표정과 연기를 받아들이고, 회당 40분짜리 이야기를 수십 회에 걸쳐 계속 따라갈 수 있느냐다. 31일 황금시간대에 선을 보일 ‘후서유기’는 시청자들의 대상으로 한 첫 대규모 실험이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