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질 것인가 쓰러뜨릴 것인가. 냉혹한 격투가들의 세계에선 상대의 기를 눌러버리는 기선제압이 뭣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격투가들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우렁찬 기합. 절권도를 창시한 브루스 리(이소룡)를 보면, 격투가들의 기합이 실제 기술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며 유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합소리가 우렁찬 격투가들은 과연 진짜 실력도 출중할까. 체코 프라하의 카렐대학 연구팀은 이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진짜 격투가들을 동원한 실험에 나섰다.

연구팀은 19~33세 아마추어 격투가 40명을 모집, 이들이 지르는 기합소리가 과연 진짜 실력과 관계가 있는지 조사했다. 우선 격투가들의 음정과 성량 등을 파악하기 위해 숫자 1~10을 크게 읽도록 하고, 대전 시 내지르는 기합소리도 함께 녹음했다. 이후 각 격투가의 신체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키와 몸무게, 체지방률, 근육량, 악력, 폐활량 등을 정밀측정했다.  

격투가들의 각종 정보를 수집한 연구팀은 녹음한 소리들을 무작위로 선발한 남녀 60명에게 들려줬다. 어떤 기합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리는지, 그리고 기합을 지른 격투가가 어느 정도 강하게 느껴지는지 물었다.

설문 결과 격투가들이 내는 기합의 크기나 음정 변화는 듣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 관계자는 "대전하기 전에 상대 격투가를 주눅들게 하는 기합의 비결은 음정의 변화와 크기로 판단된다"며 "짧은 기합의 경우 음정을 낮게, 좀 긴 기합의 경우 음정을 높게 하는 격투가일수록 강할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합이 상대에 위협적이려면 뭣보다 소리가 크고 봐야 한다"며 "역사나 문화적으로 봐도 싸움을 앞둔 전사들은 큰 목소리와 한껏 부풀려진 체격 등을 앞세웠다"고 덧붙였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기합, 고함, 포효는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 유용한 도구다. <사진=pixabay>

사실 격투가들이 기선제압에 사용하는 기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원래 수컷들은 짝짓기 계절 암컷의 관심을 독차지하거나 세력다툼 시 괴성을 지르고 상체를 크게 부풀린다. 붉은사슴이나 개코원숭이, 제비 등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이 같은 사실은 이미 입증됐다. 실제 싸움 전에 기를 죽여놔야 전술이 먹힌다는 건 병법에도 나오는 이치다.

다만 우렁찬 기합과 실제 강함은 그다지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 관계자는 "괴성으로 상대의 기를 죽이는 격투가들이 꼭 승률이 높은 건 아니었다"며 "키나 체중, 근육량 같은 신체 데이터상 '강자'로 분류된 격투가들 중 기합이 위협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의외의 결과가 상대방을 실제로 위협하기 위한 기합이 아닌, 연구를 위해 의식적으로 내지른 영향도 있는 것으로 봤다. 실제 싸움이 임박했거나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 등 현실적인 상황이었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실험 결과는 인간 발성 기능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비언어적인 발성에 대해 더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카렐대학 연구팀 실험결과는 심리학 프런티어 저널(Frontiers in Psychology)에도 소개됐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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