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지만 살아남는다. 심지어 시공간을 뛰어넘어 딸과 재회한다. 과연 이런 일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걸까. 두 명의 과학자가 '인간이 블랙홀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미국 그리넬칼리지 물리학과 조교수 레오 로드리게스와 샨샨 로드리게스는 3일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을 통해 블랙홀의 종류와 특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들에 따르면 우주에는 크기나 전하, 회전 여부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블랙홀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번 논의의 주제에 따라 블랙홀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인터스텔라'에서 묘사한 블랙홀 내부 <사진=영화 '인터스텔라' 스틸>

첫째는 회전하지 않고 전기적으로 중립적이며 우리 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지는 블랙홀(Sola-mass black hole)이다. 두 번째 유형은 초거대질량 블랙홀(supermassive black hole)로, 우리 태양보다 질량이 수백 만에서 수십 억배나 크다.

두 가지 블랙홀은 질량차 외에도 중심에서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사건의 지평선)'까지의 거리로 구분할 수 있다. 이벤트 호라이즌을 통과하는 순간 모든 것은 삼켜지고 사라진다. 그 중력은 너무나 강해 빛조차도 탈출할 수 없기 때문에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랙홀 중심에서 이벤트 호라이즌까지 거리는 질량에 따라 달라지며, 사람이 블랙홀에 빠졌을 때 살아남을 수 있을 지를 결정할 중요한 요소다. 태양 질량을 가진 블랙홀의 경우 이벤트 호라이즌까지의 반경은 3.2㎞ 미만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 은하의 중심에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대략 태양의 400만배에 달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 이벤트 호라이즌 반경도 1000㎞가 넘는다.

따라서 태양 크기의 블랙홀에 발을 내딛는 사람은 이벤트 호라이즌을 통과하는 순간 초거대질량 블랙홀보다 중심에 훨씬 가까워지게 된다. 이 정도로 중심이 가까운 거리에서는 사람이 떨어질 때 머리와 발끝에 미치는 중력이 1000억배 정도 차이가 난다.

즉 사람이 태양 크기의 블랙홀에 발을 내딛는 경우 발의 미치는 중력이 머리를 잡아 당기는 힘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 결과 사람은 길고 얇은 국수 모양으로 늘어나 살아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블랙홀 규모에 따라 사람이 받는 서로 다른 중력을 설명한 개념도 <사진=더 컨버세이션 공식 홈페이지>

반면 초거대질량 블랙홀에 빠지는 사람은 중력의 중심에서 훨씬 더 멀리 이벤트 호라이즌에 도달하며, 머리와 발끝 사이의 중력 차이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빨려들어가게 된다.

인간 생존을 위해 고려할 사항은 더 있다. 우주에서 관찰하는 대부분의 블랙홀은 가스와 먼지, 행성과 같은 매우 뜨겁고 휘몰아치는 물체(accretion disk, 강착 디스크)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이런 물질들을 피해 들어가기 위해서는 블랙홀이 주변 물질이나 가스, 별 등과 완전히 격리돼 있어야 한다.

위 조건을 모두 만족한 '고립된 초거대질량 블랙홀'을 찾아냈다면 짜릿한 모험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험자 외에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이벤트 호라이즌을 넘는 순간 이제까지 우리가 알던 우주로 돌아올 방법은 영원히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스텔라' 속 쿠퍼는 엄청나게 운이 좋아 적당한 블랙홀을 만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블랙홀을 빠져나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우리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의 개념을 작품에 끌어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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