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을 펼칠 때 특유의 냄새를 맡아본 경험은 누구나 있다. 새책에서는 약간 달콤한 향이, 오래된 책에서는 구수한 냄새나 옅은 바닐라향이 난다. 이런 종이책 냄새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실제 화학물질이 만들어낸다. 과학자들은 종이의 성분이 분해되면서 다양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종이의 주성분은 나무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와 리그닌이다. 이들 성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와 빛, 열의 영향을 받아 서서히 분해된다. 그 결과 벤즈알데하이드, 바닐린, 에틸헥산올, 톨루엔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만들어져 공기로 방출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느끼는 종이책 냄새의 정체다.

오래된 책에서 달콤한 바닐라향이 나는 것은 리그닌이 분해되면서 바닐린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팀은 낡은 책의 냄새를 화학적으로 규명한 실험 보고서를 2011년 발표했다.

오래된 책에서 바닐라 향이 나는 이유는 유기화합물의 일종인 리그닌이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도서관에 보관된 고서에서 나오는 공기를 포집해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법(GC/MS)을 실시했다. 그 결과 100종 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검출됐다. 대표적인 것이 벤즈알데하이드(아몬드 향)와 바닐린, 푸르푸랄(캐러멜이나 구운 냄새), 톨루엔(약간 달콤한 냄새)이다. 연구팀은 이 물질들의 조합이 사람들이 느끼는 오래된 책의 냄새라고 결론 내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종이의 낡은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사실이다. UCL 산하 지속가능유산연구소(Institute for Sustainable Heritage)는 책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을 분석하면 종이의 분해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예컨대 리그닌 분해 부산물의 농도가 높을수록 종이가 더 많이 낡았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유수의 도서관이나 박물관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고서를 보다 오래 보관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새책은 헌책과 달리 잉크 용제나 접착제 성분도 냄새에 영향을 준다. <사진=pixabay>

그렇다면 새책에서 나는 냄새의 정체는 뭘까. 과학적으로 보면, 새책의 냄새는 오래된 책과 조금 다르다. 새책에서는 종이뿐 아니라 잉크, 접착제, 코팅제에서 나오는 휘발성 화합물이 복합적인 냄새를 만든다. 인쇄용 잉크의 용제와 접착제 성분이 공기 중으로 조금씩 증발하면서 새책 특유의 냄새가 형성된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더. 종이책 향기에 사람들이 끌리는 이유를 심리학 측면에서 해명한 연구도 있다. 선행된 심리학 연구에서는 종이책 냄새가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할 가능성이 도출됐다. 사실 냄새는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 도서관이나 교과서를 떠올리게 하는 향이 독서의 경험을 더욱 감성적으로 만드는 셈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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