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하는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 또는 Stone of Scone)의 파편들을 끈질기게 추적한 연구 결과에 학계 관심이 쏠렸다. 파편에 얽힌 사람들의 뒷이야기도 함께 공개되면서 대중의 시선도 모였다.
영국 스털링대학교 역사학 연구팀은 19일 낸 조사 보고서에서 사라진 운명의 돌 파편의 행방과 여기 얽힌 이야기를 일정 부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운명의 돌은 9세기부터 역대 스코틀랜드 왕의 대관식에 사용됐다. 이 돌 위에서 대관식을 치른 자가 스코틀랜드의 진정한 지도자라는 전승이 이어졌다. 다만 1296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이 돌을 전리품으로 빼앗았고,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옮긴 뒤에는 영국 왕 대관식에 쓰이게 됐다. 운명의 돌이 정복자의 옥좌 밑에 놓이자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가로 67㎝, 세로 42㎝, 높이 26.5㎝, 무게 152㎏의 붉은색 사암인 운명의 돌은 쪼개진 흔적이 오른쪽 아랫부분에 선명하게 남았다. 1950년 12월 25일 왕국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던 스코틀랜드 학생들이 훔치다가 떨어뜨려 두 동강이 났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수많은 자료와 정보를 분석해 각지에 흩어진 운명의 돌 파편을 찾았다.
스털링대 고고학자 샐리 포스터 연구원은 “돌을 훔친 학생들은 깨진 덩어리를 서로 다른 차에 싣고 추적을 피해 런던을 탈출했다”며 “학생들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합류해 조각가이자 정치가 로버트 그레이에 돌을 맡겼다. 응급 복구 과정에서 돌에서 34개나 되는 작은 파편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로버트 그레이는 파편마다 번호를 매기고 신뢰하는 가족과 친구, 정치인, 기자, 심지어 해외 관광객에 증명서를 첨부해 건넸다”며 “파편들 없이 복원된 돌은 1951년 4월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 아브로스 수도원에 옮겨졌으나 다음날 아침 목사의 신고를 받은 스코틀랜드 경찰이 회수했고, 런던으로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사건으로부터 70년 이상 흐르는 사이, 운명의 돌 파편의 행방이 묘연했다. 연구팀은 신문이나 공문, 박물관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파편을 전달받은 가족이나 관계자를 겨우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사실이 하나둘 밝혀졌다.
샐리 연구원은 “로버트 그레이의 의뢰를 받은 이들은 저마다 방법으로 운명의 돌 파편을 보관했다. 일부는 금속 틀에 넣어 액세서리로 몸에 지녔고 금고에 넣기도 했다”며 “가족에 유언을 남기고 무덤에 안치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의회를 이끈 정치가 앨릭스 새먼드를 필두로 여러 정치가에게 파편이 전해진 것도 알아냈다”며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앨릭스 새먼드는 의회에 파편을 숨겼다. 심지어 TV에 출연할 때 몸에 지니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이번 조사에서 파편을 받은 호주 관광객이 이를 퀸즐랜드박물관에 기증한 사실도 확인됐다. 캐나다의 한 신문 편집자는 파편을 자신의 책상 뒤에 감췄다. 운명의 돌 파편 4개는 영국지질조사소에 표본으로 건네졌는데, 이 중 하나는 영국 왕실이 공식 행사에 쓰는 의전 마차 다이아몬드 주빌리 스테이트 코치에 장식됐다.
샐리 연구원은 “운명의 돌 파편을 받은 이들은 혹시 장물로 의심받을까 가족에도 알리지 않았다”며 “이번 조사에서는 운명의 돌 뒷면에 일정한 로마 숫자가 새겨진 사실도 처음 알아냈다. 이는 34개 파편과 돌 본체를 합친 숫자”라고 말했다.
학계는 이번 연구가 운명의 돌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밝혀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각지에 흩어진 운명의 돌 파편이 향후 어떻게 될지 정치·외교적 판단이 결정하겠지만, 학자와 대중의 시선에서는 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한 유물의 70년 역사를 되짚는 계기가 됐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