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환각제를 탄 맥주가 잉카제국 이전 페루의 지배 체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ROM)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6일 국제 학술지 Revista de Arqueología Americana에 낸 조사 보고서에서 고대 페루의 지배자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환각제 맥주를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유력 인사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는 연회는 남미는 물론 세계 각지의 고대 문화권에서 중요시됐다. 연회를 통해 국가나 부족 간의 교류가 촉진됐고 분쟁 조정이 이뤄졌다. 인류의 이런 습관은 같은 부서나 거래처 사람들의 모임 등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연구팀은 잉카제국 이전 페루의 고대 문명, 특히 600~1000년 무렵 안데스산맥 중앙부에 번성한 와리 문명의 환각제 맥주를 중점 연구했다. 와리 문명은 미라와 인신공양, 금과 은, 청동으로 만든 정교한 공예품으로 잘 알려졌다. 이들은 사원이나 상류층 주거를 갖춘 도시를 건설해 페루의 대부분과 칠레,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을 지배했는데, 주민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성장했는지는 불명확했다.
페루 문명과 같이 환각제 맥주를 썼다는 가설을 세운 연구팀은 와리 유적군을 광범위하게 조사했다. ROM 저스틴 제닝스 연구원은 "해당 지역에서는 환각 작용을 하는 식물 종자들이 발견됐다"며 "남미 고대 문명에서 사용한 천연 환각제 빌카는 페퍼나무로 만든 맥주잔 잔해에서 검출돼 당시 맥주에 빌카가 들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빌카는 환각 작용이 그다지 강하지는 않지만 여운이 오래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빌카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환각제에 관한 연구에서는 환각제를 섭취한 사람들이 더 큰 개방성과 공감성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저스틴 제닝스 연구원은 "와리 사람들은 연회에서 몇 시간 동안 떠들며 빌카가 든 맥주를 마시고 요리를 먹었으며, 기도도 올린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체험은 와리 내부는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키워 위정자들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1년에 몇 번 빌카 맥주를 마신다고 가정한 실험에서 장기적으로 새로운 인지적 규범이 형성되고 높은 개방성과 공감성이 시사됐다"며 "대면 교류에 의존했던 와리의 정치 체제를 감안하면 빌카 맥주는 아주 유용한 통제 수단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와리의 통치자들이 주민 통제나 외교를 목적으로 환각제를 썼다는 주장은 전부터 제기됐다. 와리 부족의 유적에서 강력한 환각물질이 든 치차 흔적이 나왔다는 연구 결과가 2022년 발표됐다. 치차는 남미 원주민이 즐겨 마신 막걸리 비슷한 술인데, 환각 작용이 매우 강한 디메틸트립타민(DMT)과 맞먹는 나무 열매가 검출되기도 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