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약초를 구분하고 이를 적극 사용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간 이외에 약초를 선별하고 쓸 줄 아는 동물은 오랑우탄 등 극소수로 여겨졌다.
가봉 국립과학기술연구센터(GNCSTR) 스티브 은가마 박사 연구팀은 이런 내용을 담은 야생 코끼리 관찰조사 보고서를 23일 발표했다. 이번 성과는 국제 학술지 Ecological Solutions and Evidence 최신호에 먼저 소개됐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둥근귀코끼리(학명 Loxodonta cyclotis)가 농장을 습격해 마구잡이로 바나나와 파파야 잎과 가지를 뜯어먹는 상황을 조사했다. 코끼리들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몰려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연구팀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관찰에 나섰다.
스티브 은가마 박사는 "코끼리들은 달콤하고 영양이 풍부한 바나나나 파파야 열매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부러 줄기와 잎만 골라 먹었다"며 "이 행동은 야생동물이 의학적 지식을 갖고 약초를 섭취함으로써 몸 상태를 조절하는 자가치료의 유력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봉 사람들은 예로부터 바나나와 파파야 줄기나 잎을 기생충 치료에 사용했다. 코끼리들도 이걸 깨닫고 약초로 자가치료를 하는 것"이라며 "둥근귀코끼리 무리의 똥 샘플 약 90개를 분석했더니 기생충에 감염된 개체는 건강한 개체보다 바나나 줄기나 잎을 먹을 확률이 16%, 파파야 나무껍질을 갉아먹을 확률이 25% 높았다"고 덧붙였다.
둥근귀코끼리는 원래 식물의 잎이나 가지를 먹는다. 배에 기생충이 있을 때에는 열매를 제쳐두고 약효가 있는 특정한 부위를 중점적으로 선택했을 가능성을 연구팀은 제기했다. 선행연구에서도 바나나 잎에서 추출한 성분이 양의 기생충 알을 죽이는 효력이 확인됐다. 파파야 줄기에 포함된 액체가 닭의 장내 기생충을 억제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동물이 약초를 이용하는 연구는 드물지만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동물행동연구소는 2024년 조사 보고서에서 야생 오랑우탄이 상처 치료를 목적으로 약초를 활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스티브 은가마 박사는 "이번 사례만으로 코끼리의 약용 습성을 단정하기는 이른 것은 맞다"면서도 "그럼에도 영장류가 아닌 동물이 특정 식물을 약용할 가능성을 보여준 점에서 가치가 있다. 실제로 병든 코끼리를 숲에 풀어놓았더니 스스로 필요한 약초를 찾아 몇 주 안에 회복한 사례가 과거에도 관찰됐다"고 강조했다.
둥근귀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몸집이 작고 둥근 귀와 곧게 뻗은 송곳니가 특징이다. 나이가 가장 많은 암컷을 중심으로 10마리 안팎의 소규모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초식성으로 식물의 잎, 가지, 나무껍질, 열매 등을 섭취한다. 밀렵과 환경파괴의 영향으로 개체가 줄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레드 리스트 멸종 심각종(CR)으로 지정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